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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ecial〈Vol. 001〉 『의림지』를 추억하며
    • 2023.02.11
    • 조회수 1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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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를 추억하며

     

      

 

 

젊은 한의사들에겐 낯선 이름이겠지만, 선배 한의사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의림』이라는 한의학 학술잡지가 있었습니다. 한 출판사에서 기존 간행본을 합하여 거질의 복사본을 발행하기도 했는데, 실물 잡지는 구경 못하고 그 책으로만 경험한 이들도 있겠네요.

     

『의림』의 창간은 1954년 11월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이 휴전되고 일 년여 시간이 흐른 뒤였죠. 『의림』 창간 이후로도 1955년에 창간된 『동양의약』, 1964년에 창간된 『한방의 벗』 등 여러 한의학 전문 잡지가 생겨났지만, 『의림』처럼 오랜 시간 한의계와 함께한 잡지는 없었습니다. 2012년까지이니 60여 년 가까운 세월이었습니다.

     

한의사와 한지한의사 면허는 1948년 12월에 첫 발급이 이루어졌고, 1951년 9월 국민의료법의 제정으로 법적으로도 의료인 지위가 확고해졌습니다. 1952년에 부산에서 한의사 협회가 생겨났으나, 전쟁의 와중이라 본격적인 조직과 학술 활동 등은 휴전 이후에 이루어집니다. 이 시기 학술활동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가 『의림』이죠. 한의사 배원식 선생의 사재 기부로 생겨난 이 잡지는, 뜻을 같이하는 여러 인사들의 노력으로 창간 당시에는 유일한 한의계 정론지, 학술지, 기관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지금으로 보면 한의신문 겸 민족의학신문 겸, 한의학회지 정도라 할까요.

     

대한민국 초창기 한의사들은 크게 네 부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먼저 1914년 의생규칙이 제정된 뒤 영구면허를 받은 영년의생(永年醫生) 출신의 한의사, 둘째, 의생규칙으로 갱신면허를 받은 한년의생(限年醫生) 출신의 한지 한의사, 셋째, 의생출신이 아니면서 검정시험을 통한 한의사, 마지막으로 해방이후 사립 한의학 교육기관을 통해 배출된 한의사 이렇게 말이죠. 『의림』을 무대로 활동한 이들은 주로 둘째와 셋째 부류였습니다. 특히 셋째 부류 인물들의 활동이 두드러집니다. 첫째 부류는 너무 고령화되었고, 마지막 부류는 너무 젊었죠.

 

    

 

『의림』은 학술지를 표방하였는데, 그 속에는 한의학 기초 이론과 임상에 대한 논설, 논문, 번역 등이 주로 수록됩니다. 한의계 현안과 소식 등도 말미에 소개됩니다. 초창기 한의계에 대한 정보는 대한민국 관보나 다른 자료를 통해서도 일부 알 수 있지만, 자료의 양과 질에 있어서 『의림』은 매우 귀중한 일차 문헌입니다. 이후 다른 잡지와 학회지 등의 발간으로 퇴색되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 시대별로 학술 집담과 임상 논설이 집적되어, 현대를 살아가는 한의사들에게도 가르침을 주는 소중한 원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의계 현안마다 힘써왔던 선배 한의사들의 고민과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장이기도 합니다.

     

2006년 1월, 배원식 선생의 유훈이 공개되었죠. “사학동인(斯學同人) 여러분 제(弟)는 먼저 갑니다. 제언(諸彦)님들은 끊임없이 한의학 발전에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의림』도, 배원식선생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현재 한의계에 몸담고 있는 우리는 끊임없이 치열하게 임상하고, 연구하고, 목소리를 계속 내가야겠죠.

      

 

 

 

뜻을 모아 새롭게 만드는 회지가 『의림』처럼 오랜 세월 현장의 목소리를 담고, 동학과 후학들에게도 배움의 장이 되기를 바라며 몇 자 적습니다. 悤悤.

     

     

글_含眞(lillipute@hanmail.net)

     

 

     

弊誌 발간을 되돌아보며 - 50주년 기념사

 

 

창간발행인 배원식 회장

     

      


폐지 발행을 되돌아보며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詩 한 구절인 “추억의 오솔길에 어젯밤도 울었다. 마음아 무엇이 괴로워 이 밤도 울고 새우려 하느냐”라는 구절이 저절로 읊어져 나온다.

     

창간을 며칠 앞두고 서울한의사협회에서 필자를 불러 공식으로 會誌가 나오면 출판해봐야 얼마 가지 못할 터이니 출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강한 압력과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거기에 굴하지 않고 구상한 계획대로 1954년 11월에 ‘醫林’이라 제하여 呱呱의 聲을 울리면서 세상에 내놓았다. 나오자마자 2000부를 전국 한의사들에게 무료로 배포하였다. 배포한 다음날부터 고맙다는 인사는 간 곳 없고 왈가왈부의 口舌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裵家놈의 전유물로써 그나마 일본 한방지의 번역판으로 誤字투성이 그런 잡지는 하루빨리 걷어치우라는 빗발같은 전화가 그칠 줄 몰랐다. 그런 반면에 반송은 한 권도 없었다.

 

     


우연하게도 폐지와 同年同月에 출간한 일본의 《漢方の臨床》誌와 교환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발행인 矢數道明 씨가 필자를 1961년 4월에 개최되는 제12회 일본동양의학회 京都學術大會에 초청하여 참석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일본 鍼灸誌 《醫道の日本》, 중화민국의 《自然治療》誌, 新加坡의 中醫師公會誌1), 중화인민공화국의 《中醫雜誌》 등등과 교환하게 되어 相互國間의 한방계의 활동상황과 한의학의 발행 척도를 알게 되었다. 나아가서 1970년 10월 18일에는 中華民國中醫師公會와 韓國韓醫師協會와 자매결연을 맺었으며 1992년 10월 24일에는 中華人民共和國 中國中醫藥學會와 韓國韓醫師協會와의 傳統醫學交流協定書를 결성하였다. 이와 같이 중계역할을 한 弊誌는 국제적 권위지가 됨과 동시에 20여 개국의 한방계와의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弊誌 발간에 많은 파란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전진을 멈추지 않고 45년간을 속간하여 온 것이다.

      

  

 

이제 필자도 고령에 접어들면서 노화에 수반되는 정신면과 기력이 저하되어 속간을 감당하기 어려워져 후계자를 물색하는 가운데 여러분이 추천한 한의사 강성현 선생을 만나보게 되었는데 첫인상이 믿음직스러워 보여 아무런 조건 없이 양도·인계하였다. 인계한 지 얼마가 안 되어 속간이 나오게 되었는데(2002년 5월) 4*6 배판에 성실한 내용으로 체계정연하게 칼라로 편성되어 매월 발행일자도 어김없이 발간되어 50주년을 맞이하였다 함은 오로지 강성현 발행인을 비롯하여 편집자와 그리고 기자와 사원 일동이 혼연일체가 되어 끊임없는 노력과 독자 여러분의 성원의 결실로 본다. 이에 사학계 동인들은 그 노고에 위로하며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50주년을 맞이하여 강성현 발행인을 비롯하여 편집자, 그리고 기자와 사원 일동은 자성과 자기 음미의 기회로 삼으면서 50주년을 성실하게 맞이해야 될 줄로 안다.

 

이제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각오로 한의학 역사에 전무후무한 임상학술지로 편성하여 지구 회전이 끝날 때까지 발간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글_배원식

     

의림 1세대(1호~247호(45년간))

1954년 11월 17일 창간호를 발행.

초대 편집, 발행 겸 인쇄인 : 배원식

격월간 발행

     

의림(2세대)(248호~284호(4년간))

1999년 1월 30일 제248호 발행.

2대 발행, 편집인: 반채홍

월간 발행

     

의림(3세대)(285호~336호(5년간))

2002년 5월 1일 제285호 발행.

3대 발행인: 강성현 편집인:이수완

월간 발행, 2006년 11월 제336호 이후 휴간

현재 대한약침학회 산하 Watcher로 발행 중

     

     

1) 현재 싱가포르 중의사공회에서 발행하는 《新加坡中醫雜誌》의 전신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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