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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GOT YOU UNDER MY SKIN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中
01 제3의 뇌 피부
나라는 존재를 외부와 구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다소 철학적인 질문으로 지루하기 쉬운 의학적인 글을 생뚱맞게 시작해 봅니다.
인체는 피부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상피조직이라고 하지요. 인체 최외곽에 위치하는 피부조직은 인체 표면을 덮음으로써 인체 내부와 외부를 경계 짓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피부의 기능을 간과하고 있지만, 피부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인체의 표면에 그치지 않습니다. 덴마 미츠히로가 《제3의 뇌 놀라운 피부》에서 밝혔듯 피부 조직은 환경의 정보를 감지하고 어느 정도의 정보처리를 행하며 이를 기반으로 적절한 지령을 전신 그리고 마음에까지 내리는 조직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왜 우리는 멋진 이성의 살갗이 몸에 닿으면 짜릿한 전율을 느끼는 것일까요? 살갗은 단지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을까요?
그림. 인간의 발생
혹자들은 발생학적인 이유를 근거로 피부의 기능이 신경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외배엽은 척추, 말초신경, 뇌 등 일반적으로 신경계로 분화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신경계에 속하지 않는 표피, 모낭-피지-아포크린땀샘단위, 에크린땀샘단위 및 손발톱단위(nail unit)의 상피구조는 외배엽에서 유래합니다. 또 대부분 잘 알지 못하지만 멜라닌세포, 신경 및 특수화 감각수용체(specialized sensory receptor) 역시 신경외배엽(neuroectoderm)에서 분화한 것들입니다.1) 내 몸의 최외곽 경계가 외부의 상황을 인지하고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뭔가 이상합니다. 단지 껍데기라고만 생각했던 피부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면 글의 도입부로는 성공적일 것 같네요.
02 피부는 살아있다.
피부를 기관(organ)이라고 본다면, 피부는 체내의 모든 기관 중에서도 가장 큰 기관입니다. 성인 피부 표면적이 대략 2㎡ 정도라고 이야기하지만 활짝 펼칠 경우 피부는 약 18㎡의 면적을 차지합니다. 중량도 뇌보다 무거워 총 무게가 5㎏ 이상이라고 하죠. 이러한 거대한 기관 피부에는 모근, 기름샘, 땀샘을 비롯하여 수많은 신경수용체와 신경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런 여러 구조물들의 작용으로 사람의 피부는 보호막으로서, 면역기관으로서, 배설기관으로서, 그리고 감각기관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피부는 인체 내부로 물이 침투하는 것을 막고 체온을 조절해 주고, 해로운 박테리아가 인체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침입한 박테리아를 죽이기도 합니다.
이상적인 피부의 산성도는 ph5.2~5.8인데 이는 피부가 기본적인 화학적 장벽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서 피부의 ph가 변하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게 됩니다.
피부에서는 털이 자라며 땀이 분비되는데, 사람은 매일 약 0.47ℓ 정도의 수분을 피부를 통해 몸 밖으로 내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불감 발한(insensible perspiration)이라 부르죠. 기온이 오르거나 힘든 일을 할 때 땀을 흘리게 되는데, 수많은 땀구멍에서 물 같은 분비물이 방울형태로 나오게 되는데, 그때는 마치 피부가 무언가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사실 피부의 색조 변화 역시 단순히 열의 방출이나 한냉 상태를 의미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생태계 다른 동물들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특정 부위 피부 색조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굉장히 emotional하고 sexual한 행위입니다.
그림. 공작새는 깃털의 색과 구조를 바꾸어 암컷을 유혹한다.
또, 피부는 접촉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람이 주변 세상과 접촉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피부는 주변 세상과 접촉함으로써 바깥의 세상을 인지하고, 그 외부를 인지함으로써 나를 나이게끔 경계 짓는 조직인 셈이죠. 피부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감각점들을 통해 우리는 촉각, 압각, 통각, 냉각, 온각 등의 감각을 포함하여 우리가 육감이라 부르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정보들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겠지만 곱씹을수록 신기합니다. 하긴 인체의 구조와 현상 중 신기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지요. 나는 나의 경계에 해당하는 피부에 무엇을 지니고 있을까요? 요번 코너에서는 내 피부 아래에 내가 지니고 있는 것들, 그중에서도 특히 정보의 수용과 관련된 각종 수용체들에 대해 중점적으로 알아볼 계획입니다.
03 I got you under my skin
피부 아래에 감춰져 있는 것들을 살펴봅시다. 다음 그림은 피부에 있는 감각 수용기를 나타낸 것입니다. 고전적으로 이들 수용기는 특정한 감각에 대응한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침(鍼)의 전통적인 기전은 ‘조기치신(調氣治神)’으로 요약됩니다. 우리는 뾰족한 금속을 이용해 인체 다양한 조직을 자극함으로써 특정한 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셈인데, 인체 조직에는 층차에 따라 다양한 수용체들이 존재합니다. 현대적인 침구학 서적 《Medical Acupuncture》에서는 침이 다양한 수용체 중 어떤 것을 자극하느냐에 따라 고유의 반응을 일으킨다고 적고 있습니다. 선조들 역시 자침(刺鍼)의 깊이 문제를 중시하였는데,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깊이에 따라 각기 다른 반응을 유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정됩니다. 결국 각종 수용체의 기능과 특징을 알아냄으로써 자침의 깊이 문제나 다양한 수기법이 가진 침구 치료의 의의를 이해하게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물론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 언어를 이해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죠.
피부에 있는 촉각수용기로는 Merkel 층판, Meissner 소체, 모근종말, Pacinian 소체, Golgi-Mazzoni 소체 등 뭔가 이탈리아와 독일냄새 물씬 풍기는 이름을 가진 것들이 많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촉각을 감지하는 기계적 수용체들은 그것들이 위치한 층차에 따라 일차 분류되고, 다시 신경 종말의 특징적인 끝 모양새에 따라 다시 분류됩니다만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육안으로도 보이는 Pacinian 소체와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Golgi-Mazzoni 소체 사이에는 여러 가지 중간 이행형이 있고, Ruffini 소체 등과 같이 층구조의 소체 사이에도 이행형이 있어 어떤 1개 유형의 수용기를 특정 감각의 수용기라고 이야기하기 힘듭니다. 참고로 러피니 소체는 온각수용기로 알려진 수용체이며, 그와 상대되는 Krause 소체는 또 냉각수용기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들 역시 온각과 냉각만을 수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신경섬유가 압각과 온각이라는 2종류 자극에 반응하는데, 이를 가리켜 이중 특이성(double specificity)을 지니고 있다고2) 말합니다.
피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수용체들을 차근차근 살펴보면서 우리의 몸을 이해해봅시다.
그림. 피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수용체들.
1) 자유신경종말
피부나 피부 바로 밑 조직에 있는 촉각감지기가 자극되면서 접촉 감각을 느끼게 되는데, 인체에는 최소 6개 이상의 접촉 감지기가 있어 그곳에서 받아들인 신호를 뇌에 전달합니다. 피부 전체와 많은 다른 조직에서 발견되는 자유신경종말(free nerve ending)은 유수신경섬유가 말단 부분에서 수초를 상실한 형태를 띠고 있어서 그렇게 불리며, 접촉과 압력을 감지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또 피부와 다른 조직에 있는 통증 수용기들 역시 모두 자유신경종말 형태입니다.
그림. 자율신경종말
가장 대표적인 신경종말의 형태이기 때문에 자유신경종말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하나의 신경 다발로부터 수백여개의 자유 신경종말 단위가 분지해 나옵니다. 하나의 통각 섬유로부터 나오는 섬유 다발들이 대략 직경 5㎝ 정도의 피부 영역을 덮고 있다고 하죠. 이러한 영역을 수용영역(receptor field)이라고 부르며, 인접한 수용영역은 서로 중첩되어 있습니다. 피부의 표면에서 여러 가지 적절한 자극을 가하면서 검사해 보면 이들 수용영역이 점상으로 분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을 감각점이라고 부릅니다. 많이들 들어보셨을 거예요. 만약 피부 한 구역에 동시에 두 개의 침을 놓는데 그 침이 하나인 것처럼 느껴진다면 두 침이 같은 감각점 내에 꽂힌 것입니다. 감각점의 분포는 부위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통각점 > 압각점 > 촉각점 > 냉각점 > 온각점의 순으로 그 숫자가 많습니다. 손등의 경우 1㎠ 안에 촉각점이 25, 온감점이 0~3, 냉각점이 6~22, 통각점이 100~200개 정도 분포합니다. 이런 이유로 통증이 심해지면 냉각이나 온각을 느끼지 못 한다고 설명하죠.
수용영역(receptive field)
감각점은 신경섬유의 분포 양식에 따른 기능적인 것으로 특정 수용기에 대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의 감각점 안에는 다만 통증을 느끼는 신경종말들만 분포하는 것은 아님에도 통각점에서는 통각만을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어떠한 감각은 그 감각의 수용단위가 지배하고 있는 수용영역에 투사되어 감지된다고 말하죠. 결국 피부감각이라고 하는 것은 순수한 단일수용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복잡한 혼합에 의한 감각이라고 생각됩니다.
2) 촉각과 마이스너 소체
마이스너 소체(Meissner corpuscle) 역시 잘 알려진 감각 수용기입니다. 마이스너 소체는 손바닥, 입술 끝 등 털이 나지 않은 말단부 진피 유두부에 많이 분포합니다. 접촉감각 수용기라고 여겨지는 타원형의 껍질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래서 마이스너 소체를 촉각소체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길쭉한 캡슐 속에 들어있는 신경종말이 굵은 유수신경섬유를 흥분시키는 형태로 신경전달이 시작되는데 마이너스 소체는 자극에 대해 매우 빠르게 적응하는 특성을지닙니다. 이는 마이스너 소체가 피부 위에 있는 물체의 운동과 저주파 진도에 특히 민감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소체들이 지속적인 자극에 대해 무뎌지는 반면, 촉각을 느끼는 마이스너 소체는 항상 예민하게 촉각을 느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림. 마이스너 소체의 현미경 사진
촉각은 손가락 끝과 입술에서 가장 예민하게 느낍니다. 공간적 가중(spatial summation)이라는 현상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촉자극이 피부의 넓은 범위에 가해지면 그 감각을 매우 느끼기 쉬워집니다. 이는 단지 자극이 가해진 부위가 넓어서생기는 현상이 아니라 감각점 내 여러 개의 신경 종말이 자극을 받아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앞서 피부의 두 점이 자극될 때 이 두 점이 아주 가까우면 두 점으로 식별되지 않으나, 두 점 사이가 점점 멀어지면 처음에는 선으로, 다음에는 아령 모양으로 느껴지다가 결국 서로 떨어진 두 점을 식별할 수 있게 됩니다. 두 점의 식별 가능한 거리 역시 입술과 손가락에서 가장 짧은데, 이는 입술과 손에 풍부하게 분포한 마이스너 소체들 덕분이겠죠.
공간적 가중과 시간적 가중
1. 공간적 가중(Spatial Summation) : 하나의 신경 다발로부터 수백 여개의 자유 신경종말 단위가 분지해 나옵니다. 하나의 통각 섬유로부터 나오는 섬유 다발들이 대략 직경 5㎝ 정도의 피부 영역을 덮고 있다고 하죠. 따라서 피부 특정 부위를 콕 찌르더라도 경우에 따라 소수의 신경 섬유들만을 자극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고, 수백여개의 자유 신경종말이 중첩되어 있는 중심부를 자극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후자의 경우에서 신호의 강도가 더욱 증가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공간적가중(Spatial Summation)이라고 부릅니다. 전통적인 경혈점들은 신경섬유가 풍부하게 분포한 곳으로 여겨지는데, 특정 지점이 약간 빗겨난 지점보다 강한 득기감(得氣感)을 야기하는 현상 이면에는 공간적 가중이라는 생리학적 법칙이 숨어 있을지 모릅니다.
2. 시간적 가중(Temporal Summation) : 당연히 신호를 증폭시키는 시간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바로 각각의 섬유에서의 신경 충동(impulse)의 빈도를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통각점에 저강도의 침자극을 반복적으로 가할 경우 그 신호는 증폭되어 실제 자극보다 강하게 느껴지는데, 이것을 시간적 가중이라 부릅니다. 염전보사(捻轉補瀉)를 포함한 각종 침구 수기법은 이 시간적 가중이라는 생리학적 법칙을 이용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또 한 가지 촉각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다른 하나는 바로 통증의 인식을 돕는다는 것입니다. 통점의 세포에서 감지된 통증 신호가 대뇌로 전달되는 속도는 사실 그다지 빠르지 않습니다. 촉각이 초속 70m로 전달되는 데에 비해 통각은 초속 0.5~30m 정도로 전달된다고 알려져 있죠. 통각 신경의 이러한 느린 전달 속도를 촉각 신경이 보완합니다. 예를 들어, 뾰족한 것이 닿았을 때 순간적으로 손을 떼거나, 등 뒤에서 누군가 건드리면 휙 돌아보거나 하는 반응에서 촉각 신경은 통각 신경을 보완해 우리 몸이 빠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3) 메르켈 원판
털이 있는 피부 부위에는 마이스너 소체가 거의 없지만 대신 메르켈원판(Merkel disc)이 어느 정도 존재합니다. 마이스너 소체와 유사한 구조를 지닌 것이 피부 말단 부위로 확장된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확장종말촉각 수용체(expanded tip tactile receptor)의 일종인 메르켈 원판은 사진에서처럼 이고 돔감지기(Iggo dome receptor)라고 불리는 돔 형태의 튀어나온 피부상피 조직에 밀집되어 있으면서 매우 민감한 감지 기능을 띱니다. 마이스너 소체가 자극에 매우 빠르게 적응하는 반면, 메르켈 소체는 초기에는 부분적으로 적응된 강한 신호를 보내다가 이어서 지속적으로 약하며 천천히 적응하는 신호를 전달합니다. 피부에 지속적으로 닿아있는 물체를 감지할 때에는 아마도 매우 빠르게 해당 신호를 전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신경의 분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림. 메르켈 원판의 현미경 사진
4) 모종말기관
머리카락에 무엇이 닿아도 우리는 미세한 감각을 느끼죠. 각각의 털과 밑의 신경섬유로 구성되는 모종말기관(hair end organ) 역시 접촉 감지기입니다. 몸에 있는 털이 미세하게 움직이면 털의 밑부분을 감싸고 있는 신경 섬유가 자극되는데요. 이 감지기 또한 마이스너 소체와 같이 쉽게 적응하기 때문에 몸 표면 물체의 움직임이나 초기접촉을 감지합니다.3)
5) 압각과 파씨니안 소체
압각(pressure sense)을 촉각과 구별하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자극일지라도 자극이 지속적이고 강력할 때 또는 비교적 피부 깊숙한 곳까지 미칠 때 우리는 그것을 촉각이 아닌 압각이라 합니다. 이에 반해 지속적이지 않고 약한 자극이 촉각이 되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압감은 깊은 곳에 있는 조직의 변형에 의해 일어난다고 여겨지는데, 그 말인즉슨 압력에 대한 수용기가 조금은 더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로 피하결합조직, 근막 및 골막건초에 있는 압력수용기(pressure receptor)들이 비교적 큰 기계적 압박에 반응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파씨니안 소체(pacinian corpuscle)입니다.
그림. 파시니안 소체의 현미경 사진
파씨니안 소체(Pacinian corpuscle)는 피부 바로 밑과 근막 조직의 깊은 곳에 위치하면서 이 압각을 수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씨니안 소체는 몇 백 분의 1초 만에 자극에 적응하는 특성을 보이기 때문에 진동(vibration)과 같이 조직이 매우 빨리 움직이는 상황, 조직의 매우 빠른 기계적 상황의 변화만을 탐지합니다. 동심원이 모인 것 같은 생김새의 파씨니안 소체는 점성과 탄력성을 모두 가진 구조이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한쪽에 힘이 가해졌을 때, 그 힘이 구(球)의 점성으로 인해 중심부 신경섬유와 동일한 방향으로 즉시 전달되어 수용기 전위를 일으킨 후 빠르게 소실됩니다. 특정 자극이 더 이상 전위를 일으키지 않는 상황을 일컬어 ‘적응’했다고 표현합니다.
6) 온도감각과 러피니 소체
구상 소체(Bulbous corpuscle) 혹은 러피니 종말기관(Ruffini end organ)이라 불리는 이 방추형의 수용기는 피부의 깊은 층과 더 깊은 내부 조직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림에서처럼 많은 가지를 가지고 캡슐 안에 있습니다. 매우 느리게 적응하는 러피니 소체는 무겁고 긴 접촉과 압력에 따른 피부 심층조직의 지속적인 변형에 대한 신호를 보내는데 중요합니다. 이들은 관절낭에서 관절의 회전각에 대한 신호를 알리며, 특히 손톱 주변에 풍부하여 손가락의 위치나 움직임과 관련된 감각 수용에 기여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림. 러피니 소체의 현미경 사진
앞서 러피니 소체와 크라우제 소체가 각각 온각수용기, 냉각수용기로 알려졌다고 적었으나 자유신경종말이 거의 없는 곳에서도 온각, 냉각을 느끼기 때문에 온도감각과 관련된 수용기를 특정짓는 것은 곤란합니다. 심리적인 실험에 기초해 볼 때 온점에 연결된 신경 섬유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실체가 명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신호가 초속 0.4~2m 정도의 전도속도를 보이는 C 신경 섬유를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보아 자유신경종말로부터 온각이 수용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반면 냉수용기는 확실히 규명되어 있습니다. 냉각은 초속 20m의 전도속도를 가지는 Aδ 섬유를 통해 전달되며 그 신경섬유의 말단은 여러 가지를 치며 표피세포의 기저부로 돌출되어 있습니다. 일부 냉각은 C 섬유를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일부 자유신경종말이 냉수용기로 기능하리라 추정됩니다.
일반적으로 점막에는 온각과 냉각이란 게 없지만 구강, 인두, 후두, 항문의 점막에는 있습니다. 비점막, 목젖, 음경귀두는 냉각만 있고 온각은 없습니다. 온도감각은 온도의 일정한 상태에 반응하기도 하지만 ‘적응’이라는 현상으로 인해 온도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즉 온각 수용기는 온도상승에, 냉각수용기는 온도 하강에 더 잘 반응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똑같은 온도의 물에 손을 담글 경우라도 미리 손을 차갑게 해놓으면 따뜻하다고 느끼고, 미리 손을 따뜻하게 해놓으면 차갑다고 느끼는 것이죠. 재미난 것은 냉통각섬유와 열통각섬유가 있다는 것인데, 조직 손상을 야기할 정도의 온도 구간에서는 통증을 느끼게끔 인체가 진화해 온 것 같습니다. 상식적으로 수긍할만 한 일이죠.
0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
간지러움과 가려움은 각각 ‘tickle’, ‘itch’로 번역됩니다. 이 두 감각은 겨드랑이나 발바닥에 촉각자극이 가해지는 상황 등에서 느끼는 감각이지만, 심리적 요소가 크게 관여하는지라 같은 자극일지라도 중추신경계의 상태에 따라 간지러움이나 가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명한 이야기지만 아무리 본인 스스로 본인을 간지럽힌다 해도 가려움을 느끼지 않죠. 심지어 옆 사람이 가려워 긁기 시작하면 내 몸도 가려운 ‘사회적 가려움’이란 것도 있는데, 이는 인간에서뿐만 아니라 쥐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으로 가려움 반응에 심리적 요소가 관여함을 알려주는 좋은 예입니다. 가려움을 느끼는 신경종말은 피부의 표면층에서만 지니고 있기에, 간지러움과 가려움은 외수용감각(exteroreceptive sensation)에 속합니다. 만약 누군가 뼈와 같은 심부 감각(deep sensation) 영역이나, 소장(小腸)과 같은 내장 감각(visceral sensation) 영역에서 가려움이 느껴진다고 호소한다면, 그 또는 그녀가 정신과적 문제를 지니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간지러움에 대응하는 특수한 수용기를 찾을 수 없는 관계로 가려움이란 감각은 촉각의 변형된 형태일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진화론 관점에서는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모기, 벼룩 등의 벌레가 피부 위를 기어가는 가벼운 표면 자극에 대하여 주의를 갖게 하게끔 하기 위해서 이러한 감각 체계가 형성되어 왔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 관점에서 볼 때 가려움에 의해 유발되는 긁기 반사나 앞서 언급한 사회적 가려움은 벌레나 기생충에 대비하는 진화적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죠.
피부의 외상이나 염증이 있을 때 생기는 증상으로서의 가려움은 통각마취에 의해 소실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려움을 통증의 범주로 바라보는 시각 역시 존재합니다. 통각수용기에 대하여 약한 자극이 계속될 경우에 일어나는 감각이 가려움이라는 것이죠. 통증과 가려움의 공통점은 감각이 느껴지는 부위에 의식을 집중함으로써 해당 영역을 사용하지 않는다든가 긁음으로써 환부를 보호하게 만드는 보상적인 반응이라는 것입니다. 외상이나 염증으로 야기된 국소 허혈 반응시 유리되는 프로스타글란딘이 통증반응을 매개하고, 히스타민이 가려움증을 야기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통증과 가려움이 가까운 친척쯤은 된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쉬울 것입니다.
생각보다 가려움증에 대한 ‘썰’이 다양하다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으셨을 텐데요.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가려움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반증하기도 합니다. 현상을 중시하는 한의학에서는 가려움증을 풍(風), 설풍(泄風) 등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바깥으로 발산해 나가는 현상을 바라본 표현입니다. 오장육부(五臟六腑)를 중시하는 한의학에서는 대변(大便), 소변(小便) 등을 통해 인체의 독소가 빠져나가지 못할 경우 역으로 독소가 피부로 발산되어 나가며 가려움을 유발한다고 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임상에서 오랫동안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환자를 만난다면 우선 전신적인 상태를 체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장기간 콩팥기능이 떨어져 있는 만성 신부전 환자의 경우 가려움증이 초기보다는 나중에 혈액 투석을 하게 될 때 뚜렷해지는 경향이 있고, 간질환 중 특히 쓸개즙이 배출되는 담도가 막혀 황달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폐쇄성 담도 질환(원발성 담즙성 간경변증, 간 외 담도폐색 등)에서 가려움증이 잘 동반됩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병명을 들지 않더라도 미병(未病) 상태에서는 간과 신장을 통해 몸의 독소가 빠져나가지 못함으로써 가려움이 유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05 지울 수 없는 고통
표층 조직, 심부 조직, 내장 조직 등 거의 신체 모든 부분에서 통증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신체에 대한 방어기전으로서의 통증이 중요하다는 뜻이겠죠. 소제목을 지울 수 없는 고통으로 잡았는데 아픈 것만큼은 적응할 수 없도록 인체가 진화해온 듯합니다. 감각 수용기가 통증 자극에 순응하는 일은 거의 없어서 자극이 사라질 때까지 통증은 지속됩니다. 많은 환자들이 통증을 매개로 병원에 찾아오지만, 사실 죽을 때까지 통증에 대해 연구한다 해도 다 알 수 없을 만큼 통증은 복잡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아주 개괄적인 내용만을 소개하려 합니다.
전통적으로 통증을 빠른 통증(fast pain)과 느린 통증(slow pain)으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빠른 통증은 통증 자극이 주어진 후 0.1초 이내에 느껴지지만, 느린 통증은 1초 또는 그 이상이 되어야 시작되어 서서히 증가합니다. Aδ 유수섬유에 의해 전달되는 빠른 통증은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으로 표현되고, C무수 섬유에 의해 전달되는 느린 통증은 쑤시는 듯한 둔한 통증으로 표현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한의학의 원전에서 차가움(寒), 혈관의 폐색, 통증을 연결시킨다는 것입니다. ‘불통즉통(不通則痛)’이라고 하죠. 보통 통증은 조직의 손상과 관련이 되어 있고, 또 조직의 손상은 국소 허혈 상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통증을 매개하는 신경전달물질은 혈관의 수축 이완을 야기하여 혈류의 복구를 도모하기도 하기 때문에 원전적 해석을 마냥 가볍게 여길 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종류의 병적상태에서는 통각의 역치가 저하되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을 통각과민(hyperalgesia)라고 합니다. 척수손상 등에서 통각과민이 나타날 수 있는데, 정상 시에는 다른 감각의 섬유가 통각에 대해 억제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가 손상에 의해 그 억제 작용이 사라졌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고 생각됩니다.
또 피부에 상처나 염증이 있으면 주위의 통각역치가 현저히 낮아지는데 이것을 방어과민증이라고 합니다. 역시 보상적인 기전으로 이해할 수 있죠.
06 마무리하며
잡지를 써야 하는데 백과사전을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내용을 재밌고 쉽게 정리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네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읽고 나서 바로 잊어버린다 해도 당신은 정상입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요. 《On Board》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해두시고 필요하실 때 다시 꺼내 읽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잡지는 또 없습니다.
그림. 손에서 살펴보는 감각 수용기들
기획_On Board 편집국
참고문헌
1) 대한피부과학회 교과서 편찬위원회. 피부과학. 제6판. 서울: 대한의학서적; 2014.
2) 함기선, 신문균, 최흥식. 신경생리학. 서울: 현문사; 1997. 111-4 p.
3) Guyton AC, Hall JE. Textbook of Medical physiology. 11th Ed. Philadelphia: Elsevier Saunders;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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