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MIC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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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1/3 rpm
3rd record label
더치커피와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습기가 가득 찬 더운 여름밤. 어두운 방에 불을 켜고 소파에 앉습니다. 밖은 어둑어둑하고 비가 내립니다. 씻고 가볍게 식사를 마치니 어느새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꿉꿉해진 기분을 없애려 약속을 잡아볼까 하지만 진료를 마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어딘가로 나가기가 내키지 않습니다. 혼자 술을 마시자니 너무 쓸쓸할 것 같고 차는 이런 밤에 마시기엔 너무 가벼운 듯하고….
‘더치커피를 마셔볼까?’
더치커피 또는 콜드 브류(cold brew)는 뜨거운 물이 아닌 차가운 물을 이용하여 오랜 시간을 우려낸 커피입니다. 우리가 흔히 ‘커피맛’이라고 느끼는 성분이 추출되지 않고 저온추출되는 성분들이 굵직굵직하게 자리 잡고 있어 일반적인 커피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액체죠. 희석하지 않은 원액이 입안에 흘러들어올 때의 묵직함, 입안에서 퍼지는 플로럴함, 진한 초콜릿향, 실오라기처럼 빠져나가는 여운…. 고작 커피 한 잔으로 마치 진하고 좋은 와인을 마신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커피와 와인의 중간에서 탄생한 더치커피는 바로크의 정점에 있는 바흐와 재즈음악의 사이에서 탄생한 존 루이스의 〈바흐 평균율〉과 흡사한 느낌입니다. 재즈 피아니스트답게 존 루이스는 바흐의 대위법 위에 재즈 스윙을 흩뿌려놓습니다. 수학적인 완결성과 건축학적인 완결미를 가진 바흐라는 묵직한 원두에 재즈라는 시원한 물을 부어주면, 1700년대 ‘피아노 음악의 구약성서’로 불리던 평균율이 20세기의 도회적이면서 우수에 젖은 정서를 입고 다시 태어납니다.
바흐가 재즈라는 기법으로 추출되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덥고 습한 방 안은 쿨재즈가 연주되는 재즈 바로 바뀝니다. 평균율에 따라 움직이던 피아노 음에 슬며시 그루브가 생기면서 여러 악기들이 스며듭니다. 전주곡은 존 루이스 독주로, 푸가는 존 루이스의 피아노에 바이올린, 비올라, 베이스, 기타가 합주하며 각기 성부를 나눠 맡아 대위법을 표현합니다. 피아노와 함께 쓰이는 악기들은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을 흩뿌립니다. 그 따뜻한 음색은 비 오는 날에 창문에 떨어지는 빗방울소리 같기도 하고, 더운 여름밤 갈색 더치커피 잔의 외벽에 맺히는 물방울 같기도 합니다.
음악을 듣는 중간중간 들려오는 허밍은 글렌 굴드가 바흐 음악을 연주할 때 들리는 허밍과 흡사합니다. 녹음 과정에서 최대한 줄여보려고 노력해도 흥에 겨워 터져 나오는 글렌 굴드의 허밍처럼, 음악에 심취한 존 루이스의 허밍이 ‘runner's high’처럼 터져 나옵니다. 대위법이라는 단단한 틀을 깨고 재즈로 평균율을 재해석할 때, 존 루이스는 마라톤을 종주하듯 170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관통하는 희열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존 루이스의 앨범은 바흐가 작곡한 음악 넘버 순서가 아니라 본인이 악상이 떠오르는 순서대로 작곡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총 4장의 CD 중 첫 번째 CD에 수록된 곡들은 존 루이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강력하게 악상이 떠올랐던 곡들일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답안지에 가장 자신 있는 문제들의 답을 먼저 써넣는 것처럼요.
존 루이스라는 사람이 바흐 평균율을 재즈로 해석하라는 문제에 대해 답안지를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상상하면서 4개의 CD를 들어보세요. 그러다보면 ‘양이 방대하다’라는 느낌보다 ‘관심 있는 이성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고 상상하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여름밤, 더위에 지친 내 마음을 품어주는 더치커피와 함께 루이스의 〈바흐 평균율〉을 들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비교해서 들어보는 명반
John Lewis/J.S.Bach - Prelude and Fugues - The Well Tempered Claviar (DECCA)
찰리파커,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활동한 전설적인 연주자 존 루이스의 명반. 일본 측에서 먼저 존 루이스를 모셔다 제작하여 일본 필립스 재팬으로만 발매되었는데, 더 이상 발매가 되지 않는 바람에 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이야기되던 명반이다. 최근 4장의 전 세계적 희귀음반을 모두 모아 최초로 합본이 발매 되었다.
Glenn Gould/J.S.Bach - Prelude and Fugues - The Well Tempered Claviar (SONY)
누구도 감히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철저한 바흐 탐구와 분석에 의한 완벽한 기교의 힘은 글렌 굴드 연주의 핵심. 그 안에서 표현되는 자유분방한 정신과 개성의 표출은 바흐의 정수라 할만하다.
글_김보미
편집_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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