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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fe책 읽는 저녁
    • 2025.12.23
    • 조회수 43
  • 2025.12.23 조회수 43

책 읽는 저녁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저자는 이 책 《호모 데우스》는 예언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어느 누구도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다만 책 전체에 걸쳐 역사학이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존재한다는 일종의 자기 반성적인 성찰을 반복할 뿐이죠.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유발 하라리의 전작 《사피엔스》는 호모 사피엔스의 과거와 현재를 고찰한 책입니다. 전작에서 그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통해 인류가 현 지점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유려한 문장으로 해설했습니다. 후속작 《호모 데우스》에서는 호모 사피엔스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후속작이라고는 하지만, 읽고 나니 오히려 《호모 데우스》가 본론이고 《사피엔스》가 서론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그 시작부터 거슬러 올라온 것이지요.

 

 

저자는 우선 인간이 극복해온 세 가지 문제 기아, 역병, 전쟁을 고찰합니다. 이것들은 불과 몇 백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들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심각성이 비교적 줄어들었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속적으로 기술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며, 그 발전이 생각보다 긍정적으로 기능했기 때문입니다. 미래가 어떠할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막연히 불안해하지만, 이러한 역사를 돌아볼 때 앞으로의 미래 역시 일부가 걱정하는 것만큼 부정적이지 않을지 모릅니다.

 

기아, 역병, 전쟁을 이겨낸 호모 사피엔스의 새로운 도전은 어떤 분야에서 이루어질 것인가? 유발 하라리는 ‘불멸, 행복, 신성 추구’, 이 세 가지가 새로운 도전 과제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불멸’은 죽음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미 노년학자 오브리 드 그레이와 석학인 레이 커즈와일 역시 이 문제를 화두로 제시한 적이 있지요. 기술은 머지않아 우리에게 낙관적인 영생을 가져 다줄지 모릅니다. 유발 하라리는 꼭 영생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어쨌건 죽음에 대한 도전이 인류의 새로운 도전 과제 1번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 ‘행복’은 말 그대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지난 과거를 통해 인류의 기술이 드라마틱하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그다지 행복해지지는 못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분명 인류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롭고 자유롭지만 현대인이 과거에 비해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그 이유가 행복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생화학적 기제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행복은 분명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독립적인 사건이니까요. 만약 생화학적 기제를 자유로이 조작하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지속적인 행복을 유지하는 방법 역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유발 하라리의 생각입니다.

 

이렇게 불멸과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최종적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스스로 신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세 번째 ‘신성 추구’죠. 인류의 최고 도전 과제는 결국 ‘어떻게 신이 될 것인가’라는 문제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호모데우스(Homo Deus)’의 ‘호모(Homo)’는 ‘사람 속을 뜻하는 학명’이며 ‘데우스(Deus)’는 ‘신(god)’이라는 뜻이므로, 이 책의 제목은 '신이 된 인간'이라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새로운 도전 과제를 이야기한 뒤, 그는 다시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인류가 현재의 지점에 이르렀나를 고찰합니다. 그 과정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인본주의’입니다. 인본주의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지만, ‘인간 중심주의’가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전근대사회에서는 모든 법칙을 만들어 낸 전지전능한 우주와 신이 주인공이었고, 인간은 그 서사시의 조연이나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위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주나 신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영역에서 인간의 역할이 점차 커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자본주의 경제 활동과 과학 기술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 과정에서 세상을 지배할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인간 본인이 느끼는 ‘감정’이 되었고, 인간은 최고의 권위인 ‘자유의지’를 가진 절대적인 존재로 부상하게 됩니다.

 

인본주의는 세 가지 분파로 쪼개져서 한동안 거대한 담론을 형성합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적 인본주의, 그리고 진화론적 인본주의가 그것입니다. 자유주의는 인간 본연의 자유를 중시합니다.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는 인간 집단의 가치와 집단 이성을 존중합니다. 반면 진화론적 인본주의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우열이 존재하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하고, 그것이 일종의 자연선택의 동력이 되어 발전이 일어난다는 관점입니다. 이러한 인본주의의 세 가지 담론이 20세기를 관통하는 동안 거대한 갈등을 야기하였으나 21세기 초에 이르러 자유주의가 승리를 하면서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저자는 자유주의적인 인본주의가 승리에 도취해 있는 이 시점에 새로운 갈등 국면이 열리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인본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것이지요. 인본주의의 핵심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하는데, 최근의 과학적 연구들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을 밝혀내었습니다. 아울러 생명과학은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객관적인 진정한 자아의 존재 가능성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선택과 행동들은 서로 ‘충돌하는’ 내적 실체들의 줄다리기 끝에 나온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인본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면서 그 절대성이 희석이 되고, 그 자리를 새로운 사상들이 대체해나가는 중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그렇게 근간을 잃게 된 인본주의의 자리를 알고리즘이 대체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두 가지 양상을 기술 인본주의와 데이터교로 분류합니다. 기술 인본주의는 우리가 기술을 지배하는 일종의 주체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호모 데우스’라고 부르는 것이죠. 이는 일종의 인지혁명을 통해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업그레이드하는 일에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두 번째 양상인 데이터교는 미래의 모든 것들이 데이터화되고 그것에 의해 지배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 역시 단순한 데이터로 치환되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렇게 모든 것들이 데이터화되면 결국 세상 자체가 일종의 ‘만물인터넷(internet of all things)’이 되는데 그런 양상으로 진행이 될 경우 호모 사피엔스는 사라질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미래가 절대적으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까요? 유발 하라리는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데이터교가 반인본주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인본주의가 사라진 지점 즈음에 우리는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를 묻고 있습니다. 그는 그러한 미래를 비관적으로도, 낙관적으로도 바라보지 않습니다. 모든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인본주의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인식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그것이 곧 이 책의 제목인 ‘호모 데우스’이고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미래의 호모 사피엔스인 셈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제게는 인공지능이나 생명과학의 발달에 대해 막연한 공포감이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빨려 들어가 읽었던 이 책을 덮은 후 저는 그러한 막연한 공포감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그 예측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미래를 예상하는 과정 속에서 오늘의 나를 조금 더 생생하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어느 지점쯤에 와있나? 이 책을 읽게 될 다른 분들 역시 똑같은 고민을 마주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글_주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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