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MIC과 한의학

KOMIC매거진

  • Special봄과 시간의 한의학
    • 2025.04.10
    • 조회수 43
  • 2025.04.10 조회수 43

봄과 시간의 한의학

 

 

 

 

돌고 도는 자연의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대로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이때가 오면 의학과 건강을 다루는 어떠한 매체든지 춘곤증이라는 뻔하고 뻔한 소재를 다루고 싶은 조건 반사를 일으킨다. 명색이 한의학 매거진을 표방하는 On Board는 어떻게 이 식상함을 벗어나 볼까?

 

춘곤(春困)이란 ‘봄에 느끼는 피곤함’ 정도로 단순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의학 용어는 아니다. 영어로는 ‘spring fever’라고 하는데 역시 학문적인 용어는 아니고, 봄의 시작과 함께 발생하는 기분상, 신체상, 행동상의 다양한 변화를 포괄하는 말이다.

 

방점은 ‘봄’이라는 시간에 찍혀 있다. 조금만 검색해 봐도 춘곤증의 원인과 춘곤증에 좋다는 음식, 비타민, 영양제 등을 소개한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물론, 상업적인 냄새도 살짝 느껴지는 그런 글들 말이다.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데 노력과 지면을 할애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스페셜리스트니까 ‘시간’과 ‘한의학’에 대한 과학적 진실을 심도 있게 파고들면서 지루함을 벗어나 보기로 하자.

 

봄 석 달을 가리켜 ‘묵은 기운이 펼쳐지는 계절’이라 부르지.

자연이 세상 모두를 다시 살려내려 하니 그로 인해 만물이 영화로워진다네.

그대 역시 봄처럼 조금 늦게 자되 아침 일찍 일어나 너른 걸음으로 뜰을 거닐게.

머리는 자연스레 늘어뜨리고 몸은 조이지 말고 느슨하게 두게.

항상 생(生)의 뜻을 품고,

살리되 죽이지 말며, 주되 빼앗지 말며, 상(賞)주되 벌하지 말게.

이것이 봄에 응하는 것이며, 생(生)의 기운을 기르는 방도라네.

 

- 《素問·四氣調神大論》 中에서

 

 

생체시계(biological clock)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태고(太古) 이래로 늘 태양의 변화 속에서 살아왔다. 지구가 일 년을 주기로 태양의 주변을 공전하고, 또 하루를 주기로 자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진화적으로 적응하지 못했다면 아마 인간은 현재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천(天)’은 자연적 현상과 작용 등을 포괄하는 ‘자연천(自然天)’ 개념으로도 자리 잡았다. 이 점을 알고 있다면, 황로학(黃老學) 이후 형성되어온 ‘천인상응(天人相應)’의 사고관이 ‘소우주인 인간이 대우주인 자연을 따라야한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 역시 이해하게 된다. 그리 미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체 내부에는 내재적 리듬을 주관하는 시계가 존재한다. 이를 내인성 일주기 조율기(endogenous circadian pacemaker, ECP) 또는 생체시계(biological clock)라고 부른다. 90년대 후반 포유류의 일주기 생체리듬을 관장하는 유전자들이 동정(identification)되면서, 고등 동물에서도 일주기 생체리듬이 생체시계 유전자가 구성하는 분자 네트워크에 의해 조절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뭐, 초파리에서 피리어드(Period) 유전자*가 발견된 건 이미 70년대 초의 일이다.

 

* 일주기 리듬에 관여하는 유전자 중 하나.

 

여기서 ‘리듬(rhythm)’이란 ‘규칙적으로 스스로 반복하는 생체 현상’을 말하는데, 그 특징은 예측성(predictability)과 반복성(repetition)에 있다. 우스갯소리로 배꼽시계라는 말이 있는데, 사람은 일정한 시각이 되면 시계를 보지 않더라도 배가 고파져서 밥을 먹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일정한 시각이 되면 졸려서 잠을 자야한다는 것을 알게된다는 것이다. 조금 더 긴 주기를 가진 리듬을 예로 들자면, 여성은 한 달에 한 번씩 생리를 하며, 재생성 주기가 너무 짧아서 문제라는 남성의 성욕 역시 10일 정도의 주기마다 주책없이 반복적으로 대 충동을 일으키는 것 등이 있다. 이처럼 인체에서는 다양한 주기성 현상이 나타나는데, 식사 시간의 주기나 뇌파 변화의 주기와 같이 24시간보다 짧은 주기를 갖는 경우를 ‘ultradian rhythm’이라 부르며, 생리 주기와 같이 24시간보다 긴 경우는 ‘infradian rhythm’이라 칭한다.

 

이러한 주기성에 대한 묘사는 한의학 원전에 너무나도 자주 등장하는지라 한방 생리학의 주춧돌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대표적인 편제(篇第)로 《영추(靈樞)·순기일일분위사시(順氣一日分爲四時)》편을 꼽아본다. 편명(篇名) 자체가 ‘사시(四時)의 기(氣) 흐름을 따라야 하는데, 하루도 사계절로 나누어진다.’라는 뜻이다. 지루한 내용이 아니므로 간단하게 그 논술을 살펴보자. 짧은 논술이지만 infradian rhythm과 ultradian rhythm을 동시에 다루는 데다, 사람이 왜 밤에는 병의 증세가 심해지는지를 인기(人氣)의 성쇠(盛衰)를 이유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봄은 생겨나게 하고 여름은 자라게 하고 가을은 거두어들이고 겨울은 간직하니 이것이 기(氣)의 법칙이여서 사람도 역시 그것에 응합니다. 하루를 사시(四時)로 나누면 아침은 봄이고, 한낮은 여름이고, 해가 지면 가을이고, 한밤중은 겨울입니다.

 

아침에는 사람의 기운이 생겨나기 시작하야 병(病)의 기세가 쇠하니 고로 해가 돋을 무렵에는 사람이 빠릿빠릿합니다. 한낮에는 사람의 기운이 장성해지고, 또 장성한 즉 사기(邪氣)를 이겨내니 고로 몸이 안정됩니다. 저녁에는 사람의 기운이 쇠하기 시작하고, 사기(邪氣)가 생기를 얻기 시작하니 고로 증세가 가중됩니다. 한밤중에는 사람의 기운이 속(臟)으로 들어가 사기(邪氣)만 홀로 외부 몸에 남아있으니 고로 증세가 심해집니다.*

 

* 《靈樞·順氣一日分爲四時》 〇 歧伯이 曰 春生하고 夏長하고 秋收하고 冬藏하니 是ㅣ 氣之常也라 人亦應之하니이다. 以一日分爲四時하면 朝則爲春이요, 日中爲夏요, 日入爲秋요, 夜半爲冬이니이다. 〇 朝則人氣始生하야 病氣衰하니 故로 旦에 慧이니이다. 〇 日中에 人氣長하고 長則勝邪라 故로 安이니다. 〇 夕則人氣始衰하고 邪氣始生하니 故로 加이니다.〇 夜半에 人氣入藏하야 邪氣獨居於身하니 故로 甚也니이다.

 

 

생체 시계

 

 

Google에서 ‘biological clock'을 검색해보면 위와 같은 그림을 찾을 수 있는데, 하루를 4계절에 배속한 《영추》의 설명을 이미지화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야간의 증상 악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기침·감기와 같은 호흡기질환, 두드러기와 같은 피부질환, 심지어 근골격계 통증까지, 많은 경우 환자들은 야간에 더 심해지는 통증을 호소한다. 야간의 통증 및 증상 심화를 단순히 한 가지 기전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많은 학자들은 코르티솔(cortisol)에 주목한다.

 

통증을 비롯한 신체 다양한 증상들은 대부분 염증반응의 하나이다.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코르티솔은 염증 반응의 모든 단계에 관여하여 염증 유발을 저해한다. 이런 코르티솔의 혈중농도는 저녁시간에 낮으며 수면이 시작된 후 몇 시간 동안 더욱 낮아진다.

 

 

Cortisol의 일중 분비곡선

Rybicka M, Krysiak R, Okopień B. The dawn phenomenon and the Somogyi effect - two phenomena of morning hyperglycaemia. Endokrynol Pol. 2011; 62(3): 276-84.

 

물론 ‘기(氣)=코르티솔’이라는 논지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코르티솔이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대사에 관여하여 혈당을 증가시키기는 한다. 여기서 기(氣)의 함의(含意)를 모두 논의하기란 힘든 일이므로, 우선 코르티솔의 일중변동 곡선으로 야간의 증상 악화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만 주목하자. 생리적인 현상뿐만 아니라 증세의 증감이라는 병리적인 상태에 대해서도 주기성이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생체시계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있게 공부해보자.

 

 

불규칙한 시계

 

오차가 없는 정확한 시계를 만들기 위해 인간은 지난 수 세기 동안갖은 노력을 쏟아왔다. 그리고 2014년 물리학자들은 150억 년에 1초가량의 오차만을 낸다는 ‘스트론튬 격자 시계(strontium lattice clock)’를 만들어냈다. 이 시계는 원자 에너지 준위 사이의 공명에 의해 흡수 또는 방출되는 전자기파의 고유 주파수를 통해 얻은 일정한 주기 신호를 이용하여 시계로 동작하도록 만들어진 것인데, 이런 설명을 듣는다 해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세계를 통틀어 몇 명 없을 것이다. 다시 우리의 주제로 돌아오자. 자연 그대로의 생체시계는 얼마나 정밀하고 규칙적일까?

 

우리는 보통 편안한 상태에서 심장이 대체로 1초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뛴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장시간 정밀하게 측정해보면 심장 박동의 간격(beat to beat Intervals)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며 불규칙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심지어 잠을 자고 있는 상태에서도 심장 박동은 굉장히 불규칙하다.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 에이리 골드버거(Ary Goldberger) 교수는 시간의 스케일을 바꾸어도 이러한 심장 박동의 불규칙성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건강한 피험자 열 명과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열 명의 심전도를 측정한 후, 두 그룹의 심장박동 간격을 비교해 보았다. 그런데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정상인의 심장박동 간격은 훨씬 더 불규칙적이고, 환자들의 심장박동 간격은 상당히 규칙적이었다. 건강한 사람은 심장박동이 느려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심장박동 간격을 좁혀서 혈액 공급량을 회복하려고 노력한다. 이에 반해, 심장 질환자는 과거의 심장박동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지 못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 회복하는 피드백(feedback)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것은 불규칙한 것이다.

 

It’s complicated! 언제나 그렇듯 모든 진실은 단순하게 설명하기 곤란하다. 우선 인간의 일주기 리듬은 정확히 24시간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내인성(endogenous) 요인과 외인성(exogenous)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혈중 멜라토닌이나 혈중 코르티솔의 분비 주기는 주로 내인성 요인에 의해 결정되고, 혈중 성장호르몬의 분비 주기는 주로 외인성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24시간이라는 하루의 주기에 다양한 생체 리듬을 맞추기 위해서는 외부 요인의 자극을 받아 리듬을 재조정하고 다시 동기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서 외부 요인이란 활동시간, 외부 온도, 식사 시간 따위의 너무나도 다양한 것들이다.

 

* 인간의 일주기 리듬은 24.2 ~ 24.9 시간이다..

** 내인성 요인의 영향을 받는 생체리듬의 주기는 조금 더 일정하고, 외인성 요인의 영향을 받는 생체리듬의 주기는 조금 덜 일정하다.

 

생각해보라. 생체 시계가 외부 요인과 상관없이 너무나도 일정하게 돌아가는 인간의 삶을. 언제나 똑같은 시간에 식사하고 똑같은 시간에 배설해야 할 것이다. 내일 시험에 전혀 대비되어 있지 않더라도 특정 시각이 되면 잠들어버릴 것이다. 한 달 중 어느 특정한 날에는 배우자의 정신적, 육체적 상태와 무관하게 강한 성적 충동을 느껴 그것을 해소하려는 몹쓸 시도를 할지 모른다.

 

환자들 중에도 혈압은 꼭 120/80이 나와야 하고, 혈당치는 꼭 90이 나와야 만족하는 칸트주의자들이 있지만, 건강함이나 자연스러움이라 불리는 상태는 항상 고정된 중간값을 유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생리학의 절대 원칙 ‘항상성’의 어감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생명체가 내외부의 자극에 대해 고정된 값을 유지하고자 한다는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 개념이 지고, 역동적으로 설정값을 변화시켜가며 동적 평형을 유지해나간다는 알로스타시스(allostasis) 개념이 떠오른 것도 벌써 오래 전 일이다. 생명은 기계가 아니기에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설정값을 변형시켜 나간다. 즉 알로스타시스란 인체의 능동성을 반영한 개념이라 할 수 있겠다.

 

 

태양을 피하고 싶었어?

 

앞서 말한 대로 일주기 리듬이 재조정되고 동기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외부자극을 자이트게버(zeitgeber)라고 부른다. ‘시대정신’을 뜻하는 독일어 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와 어원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 챘을 것이다. 번역하자면 ‘시간 부여자’라는 뜻인데, 시간 부여자라니 왠지 너무 멋지게 느껴진다.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만 자이트게버 중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하며 중요한 것은 바로 ‘빛’이다. 한의학에서는 빛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양기(陽氣)는 하늘과 태양 같은 것이니 제자리를 잃으면 수명이 꺾이고 번창하지 못한다. 고로 하늘이 운행하는 것은 응당 태양의 광명으로써 하는 것이니 양기는 태양에 기인하여 내부에서 외부로 올라가서 밖을 지키는 것이 된다.*



* 《素問·生氣通天論》 〇 陽氣者는 若天與日이니 失其所면 則折壽而不彰이라 故로 天運은 當以日光明이라 是故로 陽은 因而上하야 衛外者也라.

 

《소문(素問)·생기통천론(生氣通天論)》에서는 빛의 근원이 되는 태양에 기인하여 인간의 양기(陽氣)가 운행한다고 말한다. 편명의 의미는 ‘사람의 살아가는 기운이 하늘(自然天)에 통해있다.’라는 것이다. 조금 더 뒤를 살펴보자.

 

고로 양기(陽氣)는 낮 동안에는 인체 외부를 주관하니 해 뜰 녘에 사람의 기운이 생겨나서 한낮에는 양기가 융성해지고, 해가 서녘에 가면 양기가 이미 허해져서 기(氣)의 문이 이제 닫힌다. 이런 고로 저녁에는 거두어 막아야 하니 근골을 요동치지 말아야 하고 안개와 이슬을 맞지 말아야 하니, 이 세 시간대의 흐름에 거스르게 되면 형체가 피곤하고 깔아지게 된다.*

 

* 《素問·生氣通天論》 〇 故로 陽氣者는 一日而主外하니 平旦人氣生하고 日中而陽氣隆하고 日西而陽氣已虛하야 氣門乃閉라. 是故로 暮而收拒리니 無擾筋骨하고 無見霧露라야하니 反此三時면 形乃困薄이라.

 

앞서 살펴본 《영추·순기일일분위사시》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의 기운 흐름은 태양의 운행과 궤를 같이하고 있으니, 하루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라고 선조들은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소위 양생법(養生法)이라고 하면, 전통 한복을 입고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이 태극권과 같은 동작을 하는 모습을 연상한다. 이게 다 한의학을 신비하고 알 수 없는 오컬트적인 것으로 묶어두려는 누군가의 음모 때문이다. 한의사들도 학교 다닐 때 장풍 쏘는 법 같은 걸 배우는 게 아니라, 인체의 구조와 생리를 다루는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약리학 등을 배운다. 양생법 역시 병에 걸리지 아니하도록 건강관리를 잘하여 오래 살기를 꾀하는 방법일 뿐, 그렇게 신비로운 무언가가 아니다. 그리고 양생법의 기본이 되는 것은 자연의 시간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새벽 3시까지 술 마시지 말고 자라고! 그게 ‘양생’이다!

 

계피는 싫어해도 cinnamon은 좋아하는 것처럼, 영어로 말하면 사람들은 뭔가 세련되고 있어 보인다고 생각한다. 좋다! 조금 더 현대적인 학문 용어로 표현해보겠다. 양생법은 생리학에서 말하는 ‘행동적 조절(behavioral control)’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체온 조절을 예로 들어보자. 인체 내부의 체온이 높아지면, 뇌의 체온 조절 영역은 사람이 덥다는 감각을 느끼도록 신호를 보낸다. 반대로, 체온이 낮아지면 추위에 따른 불쾌한 기분을 느끼도록 신호를 보낸다. 그런 까닭에 사람은, 따뜻한 방으로 들어간다든지 잘 보온 되는 옷을 입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몸을 안락하게 만든다. 이것은 많은 생리학자들이 과거에 인식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체온 조절 시스템이다. 실제로 이렇게 행동을 변화시키는 체온 조절 시스템은 심각하게 추운 환경에서 인체 열 조절 기전이 고장 나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이 글의 도입부를 마치 시(詩)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했다. 그 구절 역시 한의학의 경전 《황제내경(黃帝內經)》의 내용 중 일부이다. 바로 《소문·사기조신대론(四氣調神大論)》이라는 편인데, 여기서 ‘조신(調神)’은 ‘신(神)을 조절한다.’라고 직역할 수 있다. 신(神)은 오장(五臟)에 저장되어 사물을 인식하고 처리하는 정신활동 및 일체의 생명 활동을 주재하므로 결국 사기조신(四氣調神)이란 ‘사계절 기후에 맞추어 정신과 생활을 조절한다.’라는 뜻으로 의역할 수 있겠다. 이게 바로 양생이라는 말이다!

 

인터넷에서 ‘춘곤증 예방법’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스트레칭으로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세요.’, ‘헐렁한 옷차림으로 혈액순환을 도와주세요.’, ‘졸음이 밀려올 땐 산책을 하세요.’ 하는 조언들이랑 하등다를 게 없는 말들이 수천 년 전에 쓰인 의학 경전에 이미 적혀 있었던 거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태양의 흐름에 맞추어 활동하고 잠드는 시각을 정하는 것이 양생의 기본이다.

 

이제 머나먼 행복한 곳으로 떠난 한 남자처럼 ‘태양을 피하고 싶었어.’라고 아무리 울부짖어도, 아무리 달려 봐도 태양은 계속 내 위에 있다. 인간은 태양의 흐름을 피해선 건강하기 힘들다. 〈사기조신대론〉에서는 봄, 여름에는 야와조기(夜臥早起)하고, 가을에는 조와조기(早臥早起)하고 겨울에는 조와만기(早臥晩起)하라고 말하는데, 함유된 의미는 결국 일주기 일치를 통해 정상 생리 리듬을 지키라는 것이다.

 

 

인체의 북극성(polaris)

 

 

그런데 이 빛을 도대체 인체 어디에서 감지하는 걸까? 질문이 잘못되었구먼… 그러니까 눈을 통해 감지된 빛을 어디서 빨아들여 인체의 주기라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즉 인체에 있어서 시간에 대한 페이스메이커는 무엇일까?

 

빛은 눈을 통해 들어와서 일차적으로 뇌의 시교차상핵(suprachias matic nucleus, SCN)을 자극하고, SCN은 이 자극을 받아 생체리듬을 조절한다고 알려져 있다. SCN에 위치하는 생체시계는 새 벽 녘(dawn)과 어스름히 해가 질 때(dusk) 빛에 대한 반응성의 창구가 되고, 일주기 리듬의 페이스메이커로 모든 계절에 대한 시계(clock for all seasons) 역할을 하여 중추 생체시계로 불린다.

 

SCN의 신경세포들을 배양하면 놀랍게도 내재되어 있는 24시간 주기의 진동성이 관찰된다. 이 신경세포들은 일주기 신호를 다른 뇌 영역과 말초기관에 전달하여 생체 내에서 리듬을 조정하고 있다. SCN은 배내측 부분과 등가측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배쪽 SCN의 신경화학물질들은 빛 자극에 반응하며, 등쪽 SCN의 신경화학물질들은 내인성 자극에 반응하고 빛의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망막시상하부로(Retinohypothalamic tract, RHT)는 망막신경절세포로 들어온 빛 자극을 직접 SCN으로 전달하는 통로이다. RHT를 통해 전달되는 빛 자극은 글루타메이트 같은 흥분성 아미노산, 뉴로펩티드 Y, 모노아민, GABA 및 아세틸콜린에 영향을 받아 생체시계조절에 관여한다. 대사성 에너지와 신경전달물질의 생성, 효소활성, 호르몬 생성 등과 같은 생리적 리듬들은 모두 빛-어둠 주기의 위상에 맞추어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고대 한의학은 이러한 현대적 지식에 어느 정도까지 접근해 있었을까? 물론 정답은 ‘모른다.’이다. 그들이 정확히 어떤 의도로 다음과 같은 글들을 남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흥미로운 부분이 적지않다. 《영추·구궁팔풍(九宮八風)》의 문장이다.

 

태일(太一)은 항상 동지(冬至)에서부터 협칩궁(叶蟄宮)에 46일을 거하고, 다음날에는 천류(天留)에 46일을 거하며, 다음날에는 창문(倉門)에 46일을 거하고, 다음날에는 음락(陰洛)에 45일을 거하며, 다음날에는 상천궁(上天宮)에 46일을 거하고, 다음날에는 현위(玄委)에 46일을 거하며, 다음날에는 창과(倉果)에 46일을 거하고, 다음날에는 신락(新洛)에 45일을 거하며, 다음 날에는 다시 협칩궁에 거하니, 이러면 다시 동지가 온 것이다.*


* 《靈樞·九宮八風》 〇 太一은 常以冬至之日로 居叶蟄之宮四十六日하고 明日居天留四十六日하며 明日居倉門四十六日하고 明日居陰洛四十五日하며 明日居(上)天宮四十六日하고 明日居玄委四十六日하며 明日居倉果四十六日하고 明日居新洛四十五日하며 明日復居叶蟄之宮하니 曰冬至矣니 이다.

 

우선 자연의 시간표를 정해주는 기준이 등장한다. 선조들은 그것을 ‘태일(太一)’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다름 아닌 북두칠성이다. 북두칠성은 천구의 북극을 일주운동 하면서 밤 동안 시각을 알려준다. 게다가 초저녁이나 새벽에 북두칠성이 놓인 모습을 보면 몇 월인지도 추정할 수 있다. 해가 진 초저녁, 북두칠성의 자루 끝에 위치한 초요성(招搖星)의 방향에 따라 달(month)의 명칭을 정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초요성이 인방(寅方)을 향하는 달은 인월(寅月)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북두칠성만 봐도 자월(子月)인지 해월(亥月)인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선사시대 이전부터 북두칠성은 시계의 역할 뿐만 아니라 달력의 역할을 동시에 해왔다. 이러한 이유로 북두칠성은 단순히 생활에 필요한 지식일 뿐만 아니라 자미궁(紫微宮)에 옥황상제가 살고 있다는 식의 신앙적 대상으로까지 여겨지게 되었다. Holy bible 말고 《성경(星經)》이라는 책에서는 ‘太一星在天一南半度 天帝神 主十六神’이라고 적고 있다.

 

왜 뜬금없이 천문학 질이냐고? 북두칠성은 북극성(polaris)을 찾는 표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북두칠성의 국자 앞부분 길이를 5배로 늘리면 그 자리에서 북극성을 찾을 수 있는데, 북극성은 다름 아닌 우주의 중심이다. 그리고 소름 끼치게도 《황제내경》에서는 인체에도 太一(태일)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소문·본병론(本病論)》에는 ‘심(心)은 군주지관(君主之官)으로서 신명(神明)을 주관하는데, 신(神)이 지키는 자리를 잃으면 황제 태일제군(太一帝君)이 있는 니환궁(泥丸宮) 아래 상단전(上丹田)에서 부유한다.*’라고 적고 있다. 힌두교에서 ‘브라마의 창’, 고대 중국에서 ‘천상의 눈(天目)’이라 부른 니환궁은 쌍단궁(雙丹宮), 명당궁(明堂宮), 유주궁(流珠宮), 대제궁(大帝宮), 천정궁(天庭宮), 극진궁(極眞宮), 현단궁(玄丹宮), 태황궁(太皇宮)과 함께 뇌의 구역 중 하나이다. 여기가 과연 어디일까에 대해서는 해석을 자제하겠다. 그냥 심증만 가져보자. 물론 이런 문장도 있다.

 

* 《靈樞·九宮八風》 〇 太一은 常以冬至之日로 居叶蟄之宮四十六日하고 明日居天留四十六日하며 明日居倉門四十六日하고 明日居陰洛四十五日하며 明日居(上)天宮四十六日하고 明日居玄委四十六日하며 明日居倉果四十六日하고 明日居新洛四十五日하며 明日復居叶蟄之宮하니 曰冬至矣니이다.

 

방광족태양(膀胱足太陽)의 맥(脈)은 눈 안쪽 모서리에서 기시하여 이마로 올라가 정수리에서 교차한다.*

 

* 《靈樞·經脈》 〇 膀胱足太陽之脈은 起于目內眥하야 上額交巓이라.

족태양(足太陽)은 뒷목을 통해서 뇌(腦)에 들어가는 것이 있는데, 이 부위는 곧바로 눈의 뿌리(目本)에 이어져 있는데 이름하여 안계(眼系)라 하니, 머리와 눈이 아파 괴로우면 그를 취하는데 (위치는) 뒷목 사이 양 힘줄의 사이에 있다. (足太陽이) 뇌(腦)로 들어오면 이에 양교(陽.)와 음교(陰.)로 갈라지고, 음(陰)과 양(陽)이 서로 교차하여서 양(陽)은 음(陰)으로 들어오고, 음(陰)은 양(陽)으로 나가면서 눈 안쪽 모서리에서 교차하니 양기(陽氣)가 성하면 눈을 부릅뜨고 음기(陰氣)가 성하면 눈을 감는다.*

 

* 《靈樞·寒熱病》 〇 (其)足太陽은 有通項入于腦者하니 正屬目本이라 名曰眼系라 頭目苦痛取之하니 在項中兩筋間이라. 入腦하면 乃別陰蹻陽蹻하고 陰陽相交하야 陽入陰, 陰出陽하고 交于目銳眥하니 陽氣盛則瞋目하고 陰氣盛則瞑目이라.

 

 

황제(黃帝)가 기백(岐伯)에게 위기(衛氣)의 운행과 위기(衛氣)가 음분(陰分), 양분(陽分)을 드나들며 교차하는 것에 대해 듣고싶다 하면서 위기(衛氣)의 운행은 어떠한지 물었습니다.

 

기백(岐伯)이 말합니다.

 

“자오(子午)가 세로축(經)이고 묘유(卯酉)가 가로축(緯)입니다. 하늘은 28수(二十八宿)를 일주하고 동서남북의 한쪽 면에 7개씩 별이 있어 4×7은 28개이니, 방(房)이라는 별과 묘(昴)라는 별을 잇는 선이 가로축(緯)이고, 허(虛)라는 별과 장(張)이라는 별을 잇는 선이 세로축(經)입니다. 이런 고로 방(房星)에서 필(畢星)까지는 양(陽)이고, 묘(昴星)부터 심(心星)까지는 음(陰)이니, 양(陽)은 낮을 주관하고 음(陰)은 밤을 주관합니다. 고로 위기(衛氣)의 운행은 하루 낮, 하루 밤에 몸에서 오십 바퀴를 도니 낮 동안에는 양(陽分)을 25바퀴 돌고, 밤에는 음(陰分)을 25바퀴 돌되, 오장(五臟)에서 돕니다. 이런 고로 해뜰녘에 음(陰)이 다하면 양기(陽氣)가 눈에서 나오고, 눈을 크게 뜨면 기(氣)가 머리로 상행하여 뒷목을 타고 족태양(足太陽)으로 내려와서 등을 따라 내려와 새끼발가락 끝에 이릅니다.”*

 

* 《靈樞·衛氣行》 〇 黃帝ㅣ 問於歧伯曰 願聞衛氣之行과 出入之合한대 何如이니잇가? 〇 伯高曰 歲有十二月하고 日有十二辰하니 子午爲經이오, 卯酉爲緯이라. 天周二十八宿而一面七星하야 四七二十八星이니 房昴爲緯요, 虛張爲經이라. 〇 是故로 房至畢爲陽이오, 昴至心爲陰이니 陽主晝하고 陰主夜하니이다. 故로 衛氣之行은 一日一夜五十周於身하니 晝日行於陽二十五周하고 夜行於陰二十五周호대 周於五藏하니이다. 〇 是故로 平旦에 陰盡하면 陽氣出於目하고 目張則氣上行於頭하야 循項下足太陽하야 循背下至小指之端하니이다.

 

족태양(足太陽)의 본(本)은 발꿈치 위 5촌 중에 있고 표(標)는 양쪽 명문(命門)에 얽혀있는 곳에 있으니, 명문(命門)이라는 것은 눈입니다.*


* 《靈樞·衛氣》 〇 足太陽之本은 在跟以上五寸中하고 標在兩絡命門하니 命門者는 目也니이다.

 

정리하자면 빛이 들어오는 눈에 맺히는 방광경(膀胱經)을 통해 위기(衛氣)의 운행이 시작된다는 것이며, 공교롭게도 방광경(膀胱經)은 안계(眼系)를 통해 뇌로 들어가 뇌에서 교차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마치 시신경처럼… 어떻게 알아쓰까… 갈라봤쓰까… 갈랐다고 보여쓰까…

 

 

 

 

너무 나갔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지적하였듯이 고대의 수렵 채집인은 개인 수준에서 보자면 역사상 가장 아는 것이 많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었을지 모른다.

 


시간 생체학(Chronobiology)

 

시간생체학(Chronobiology)은 개체 내에서 시간에 따라 일어나는 변화를 다루는 학문이다. 생리적인 것부터 병리적인 것까지 수많은 인체 현상들과 생체시계와의 관련성이 점차 밝혀지면서 시간생체학의 패러다임은 더욱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다. 놀랍게도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대부분의 생물학적 경로들이 일주기 생체시계와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초창기에는 일주기 분자 생체시계가 작동하는 세포를 SCN 밖에서 새로이 발견하고서 신기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분자 생체시계가 작동하지 않는 세포를 발견했다는 것이 오히려 재미있는 발견으로 평가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생체시계는 생리, 대사, 행동 전반을 조절하는 범용적인 조절 기구이다. 현재 일주기 생체리듬의 교란이 흔히 떠오르는 수면장애나 피로증후군뿐만 아니라 비만, 당뇨와 같은 대사질환, 심혈관계 질환, 각종 종양, 류마티스, 치매, 정신장애 등 매우 광범위한 질환들의 위험요인이 된다는 사실이 널리 인정받고 있다. 대표적인 것을 살펴보자.

 

① 수면장애

불면증과 과수면 환자 중 10~40%는 일주기 리듬 수면장애로 추정된다. 게다가 유전학적 연구를 통해 PERs, CRYs의 변이에 의한 유전성 일주기 리듬 수면장애가 규명되었다.

 

② 암

일주기 리듬의 교란은 종양 발생 위험도와 관련도가 매우 높다. BMAL1, PER2 유전자가 결손된 생쥐는 종양을 유발하는 DNA 손상 자극에 더 민감하다는 게 밝혀졌다. 최근 생체리듬을 이용한 시간치료요법(chronotherapy)도 항암치료에 응용하고 있다. 항암제를 하루 중 특정 시기에 투여하면 효능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정상 세포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③ 대사 및 심혈관계 질환

대사 및 심혈관계 기능은 일주기 리듬의 즉각적인 영향을 받는다. 단지 수면을 1-2시간만 제한해도, 한 달 이내 각종 대사지표에 이상이 생기고, 장기화될 경우 심장마비의 위험성이 크게 증대된다. 대사질환 치료제의 주요 분자 표적인 AMPK, SIRT1은 분자 생체시계와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④ 뇌 질환

일주기 리듬의 취약성이 뇌질환의 발병 및 진행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주장이 점차 지지를 받고 있다. 정서장애, 약물중독뿐만 아니라, 노화에 수반되는 인지 기능의 저하, 각종 퇴행성 뇌질환과도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2014년에는 국내 연구진이 일주기 리듬과 정서조절을 연결하는 핵심 매개인자가 REV-ERBα단백질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chronobiology'를 키워드로 다양한 자료들을 검색해보기 바란다. 떠오르는 신약표적이 되어버린 생체시계 관련 연구 분야에 이미 수많은 자본들이 달려들고 있다. 제약계의혁명이 이 생체시계 유전자를 통해 이뤄질지도 모를 일이다. 앞서 가볍게 언급했었지만 최근 대사질환 치료제의 주요 분자 표적으로 각광 받는 AMPK나 SIRT1 등의 인자들은 분자 생체시계와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특히 이들 세포성 대사조절 인자들은 세포의 에너지 센서로서 뇌 및 말초 대사기관의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포 대사 활성이 일주기 생체시계의 제어를 받는 동시에, 섭식과 혈중대사산물들의 변화가 세포 대사를 통해 일주기 생체리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야식증후군’을 들 수 있겠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도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남겨본다. 생체 시계가 유전자 단위에서 어떻게 작동하느냐 하는 기전이다.

 

포유동물의 경우 최상위 단계의 전사인자는 CLOCK과 BMAL1이며, 이들의 조절을 받는 하위 유전자로는 PERIOD(PERs) 및 CRYPTOCHROME(CRYs) 계열 유전자, 핵수용체 계열의 RORα와 REV-ERBα 등이 있다. CLOCK과 BMAL1이 하위 유전자의 발현을 촉진하고, 하위 유전자 중 PERs 및 CRYs의 단백질 산물이 다시 상위 전사인자를 억제하는 피드백 고리 구조를 이룬다. 이러한 조절기구를 생체시계 분자 네트워크의 중추 고리(core loop)라고 한다. RORα는 BMAL1 유전자의 일주기적 발현을 증가시키며, 이에 비해 REV-ERBα는 강력한 전사 억제인자로 작용한다. 이러한 조절 기전을 생체시계 보조 고리(auxillary loop)라고 하며, 이는 중추 고리의 주기를 안정화한다. 이상과 같은 피드백 분자 고리의 작용이 단일 세포 수준의 주기성을 생성하며, 이들 분자 네트워크를 “일주기 분자 생체시계”라 정의한다.

 

Vieira E, Merino B, Quesada I. Role of the clock gene Rev-erb α in metabolism and in the endocrine pancreas. Diabetes Obes Metab. 2015; 17 Suppl 1: 106–14.

 

유전자라니 한의학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로만 보이는가? 인체의 수많은 기능은 쌍방향으로 조절된다. 학창 시절 유독 납득하기 어려운 이론이 있었다. 바로 장부(臟腑)에 배속된 경락이 주관하는 시간이 있다는 원전의 기술(記述)이다.

 

장부에 배속된 경락이 주관하는 시간

 

여전히 저 기술이 맞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 현대에 밝혀진 지식에 따르면 각각의 장기들은 단지 수동적으로 중추 고리의 신호에 맞추어 반응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신호를 보내 생체리듬을 재조정하기도 한다. 시간생체학에서는 ‘국부 생체리듬’이라는 새끈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SCN 중추 생체시계는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취합하여 기준으로 삼고, 다양한 국부 생체시계의 리듬을 자신에게 동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일주기 생체리듬 조절 시스템의 위계 구조는 진화 과정에서 다세포 동물이 다양한 세포들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생성한 것이라 생각된다.

 

췌장을 예로 들어보자. 췌장 소도(pancreatic islet)에서 분비되는 인슐린과 글루카곤은 포도당 항상성에 필수적인 내분비 신호이며, 이들의 분비는 생체시계 조절인자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조절된다. 최근 미국 노스웨스턴 의과대학의 Joseph Bass 교수 그룹은 췌장 베타세포 특이적인 enhancer들에 의해 인슐린 분비 관련 유전자들의 일주기적 전사 조절이 이루어짐을 규명하였다. 췌장의 국부 생체시계들이 포도당 항상성을 수면-각성 주기에 따라 유지시키는데, 췌장 베타세포에서 인슐린이 분비될 때 인슐린 분비 소포체(insulin secretory vesicles)의 조립과 수송에 관련된 일단의 유전자들에 유전체 수준에서 동기화된 일주기성 발현이 유도된다는 것이다. 이 그룹 연구자들은 2010년에 췌장에서도 독자적인 24시간 생체시계가 존재하여 인슐린 분비와 관련된 유전자와 단백질의 활동을 조절하고 이 생체 시계에 이상이 생기면 인슐린 분비가 줄면서 당뇨병이 발생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어떠한가? 배꼽시계의 비밀이 풀리는 기분인가?

 

하고싶은 말은 오장육부의 불균형을 조절함으로써 얼마든지 깨어진 일주기리듬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들 한의학을 4차원 의학이라고 말한다. 언제나 치료를 할 때 시간이라는 또 하나의 요소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사시(四時)에 따라 주 치료 경혈(經穴)을 다르게 선정했고, 사시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약을 쓰고, 가감(加減) 약재를 달리했다. 시간생체학이란 새로운 분야가 각광받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 것인가,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한의학은 멈춰 있는 학문이 아니다. 모든 한의사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마음속에 되새기고 한 발짝 더 나아가기를 기대하면서 지루한 글을 급히 마무리한다.

 

 

기획_On Board 편집국

 

 

참고문헌

- 김성환, 이용범. 《黃帝內經素問 · 四氣調神大論》 注釋書의 比較分析硏究.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2000; 13(1): 184-232.

- 김용진. 九宮八風에 대한 硏究.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1998; 11(1): 22-41.

- 김희정. 黃老思想의 天人相應觀 硏究 : 「黃帝四經」, 「管子」四篇, 「淮南子」, 「黃帝內經」을 中心으로 [박사학위논문]. [서울]: 서강대학교 대학원; 2004.

- 손기훈. 일주기리듬 및 생체시계 연구분야 기술조사 연구. 코센리포트. 2016.

- 손기훈. 일주기 생체시계 : 떠오르는 신약 표적. KSMCB Webzine. 2014.

- 이상암. 시간생체학의 기본 원칙. J Kor Sleep Soc. 2005; 2(1): 1-9.

- 이용복. 고조선의 천문과 북두칠성. 고천문 워크숍 논문집. 2008; 2 :13-31.

- 정재승. 과학콘서트. 동아시아; 2003.

- 주은연. 일주기리듬의 신경생물학. J Kor Sleep Soc. 2006; 3(1): 1-5.

- Arthur CG, John EH. Textbook of Medical physiology. 11th Ed. Philadelphia: Elsevier Saunders; 2006.

- Bass J. Circadian topology of metabolism. Nature. 2012; 491(7424): 348-56.

- Halberg F. Chronobiology. Annu Rev Physiol. 1969; 31: 675-725.

- Rybicka M, Krysiak R, Okopie. B. The dawn phenomenon and the Somogyi effect two phenomena of morning hyperglycaemia. Endokrynol Pol. 2011; 62(3): 276-84.

- Marcheva B, Ramsey KM, Buhr ED, et al. Disruption of the clock components CLOCK and BMAL1 leads to hypoinsulinaemia and diabetes. Nature. 2010; 466(7306): 627-31.

- Perelis M, Marcheva B, Ramsey KM, et al. Pancreatic β cell enhancers regulate rhythmic transcription of genes controlling insulin secretion. Science. 2015; 350(6261): aac4250.

- Wikipedia.

내리기댓글댓글아이콘0